티스토리 뷰

728x90

주부들은 집에서 놀고 있나? 우리는 쉬지 않고 일하는데 노동은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오히려 '논다'며 비꼼을 당한다. 제목부터 나의 흥미를 확 이끈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

내가 '전업주부들의 세상'이라고 생각했던 세상은 사실 '비자본주의적인 세상'이었다. 내가 '인간이라면 당연히 지켜야 할 에티켓'이라고 생각했던 규범들은 실상은 '서구 자본주의사회에서 파생된 에티켓'이었다.

왜 그림자노동, 즉 가사노동은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걸까?

자급자족하며 다 같이 사이좋게 지내다 힘 있는 사람이 줄을 긋고 여기 내 땅. 너네는 일하러 와. 했더랬다. 여성들이 불합리하다고 목소리를 냈고 그 여자들을 집에 묶었다. 그리고 마녀사냥을 시작했다. 힘없는 노동자에겐 일 끝나고 집에 가서 다시 일을 할 수 있는 상태로 보내지기 위해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 자기 회사를 위해 매일 다시 일할 수 있는 상태로 보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건 기업이 할 일이다. 그러나 그 일을 주부에게, 아내에게 위임했다. 그것도 무급으로. 여성들에게는 너희들은 출산과 양육이 맞아, 다양한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보다는(회사생활보다는) 마음 맞는 소수의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맞아라고 세뇌시켰다. 아이가 어릴 때 일하면 독한 엄마라 하며 죄책감을 심어주어 경단녀로 만들어놓고 아이가 어느 정도 커서 엄마 손이 필요로 하지 않을 때 전업주부로 있으면 한심하게 여긴다. 여성은 1/3, 1/4의 돈만 받고 일을 하도록 몰린다.

사람은 해당 분야의 물꼬가 트일 때, 가능성이 직접 시야에 들어올 때에야 비로소 소망을 제 바깥으로 꺼내놓는다는 것을. 이는 현실적인 취직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엄마들에게 시간 여유가 생겼다는, 이제 24시간 아이 옆에 붙어 있지 않아도 되는 시기가 도래했다는 면에서의 가능성, 그러니까 구직자 쪽 마음가짐 면에서의 가능성을 말한다. 가용시간이 늘어남과 동시에 넘볼 수 있는 경계선의 범위가 자동 확장되었다는 것.

결국 가부장적인 사회, 남자는 밖에 나가서 일을 해야하고 여성은 집에서 아이를 잘 양육하며 남편 내조하는 거라는 건 남녀 모두에게 좋지 않다. 여성도 사회에서 자신의 능력을 맘껏 펼치며 승승장구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남성도 집에서 아이를 양육하며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개개인의 특성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깡그리 무시당하고 나라는, 기업은 임신 출산을 겪지 않고 가정을 위해 그만둘 생각조차 못하는 남성들을 노동자로 이용한다.

생각해보니 그게 모두 '돈'의 자장이었다. 돈 버는 나에게는 가부장제가 발휘하는 막강한 힘에 맞설 강력한 자장이 형성되어 있었고, 그 자장의 핵심에는 내가 밖에서 '돈'을 벌어 집 안으로 가지고 온다는 단순하고 명확한 사실, 가족들을 먹고 입고 살게 하는 재화를 획득해 온다는 사실이 자리해 있었다.

매일 저녁 뉴스에 발표되는 국민총샌산, 주가지수, 실업률 같은 경제지수들에 먹이고, 입히고, 숙제를 봐주고, 어린이와 노인을 보살피는 돌봄 노동은 포함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한 면만 본다. 남녀임금 차이가 난다는 것에 대해 우리 회사에서는 똑같이 받는대? 라고 말한다. 통계는 전 연령을 기준으로 한다. 결혼과 출산 전에는 같이 받을지 몰라도 여성들이 왜 경단녀가 될 수밖에 없는지, 재취업 후 쥐꼬리만한 임금을 받으면서 일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경력단절을 자초한 여성의 탓이기만 할까.

전업주부는 놀고 있지 않다. 질타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 집에서 가정을 돌보는 존재가 없다면 노동자는 깨끗한 옷을 입을 수가 없고, 일할 수 있는 정신을 유지하기도, 건강을 해치지 않고 끼니를 때울 수도 없다. 또 아이를 낳지 않는 나라는 결국 망할 수밖에 없다. 각자 할 일이 다를 뿐. 절대 주부에게 집에서 논다고 하지마라.

마녀사냥은 현재 진행형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주변을 보자. 글자 그대로 사람을 마녀로 몰아 죽이는 일은 일어나지 않지만 마녀사냥으로 대변되는 여성의 희생자화 습속은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 끈질기게 일어나고 있다. 우리 주위에 범람하는 언어를 보자. 된장녀, 지하철녀, 개똥녀, 맘충, 김 여사... 누군가를 탓하고 단죄하는 언어는 늘 여성형 명사를 동반하지 않는가.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일이 발생하면 잘못을 저지른 당사자보다 엄마나 아내, 교사에게 책임을 묻는 일이 비일비재하지 않는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