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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쓸 때면 삽질하는 기분이 든다._5p

고 말하지만 이미 그녀는 시집을 낸 경력이 있는 시인이다. 저 문장이 바로 눈에 꽂혔던 건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쓸 때도 삽질을 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몇 번을 써도 늘 마음 같지 않고, 머릿속에 맴돌고 있는 나의 감정과 느낀 점을 도저히 글로 옮겨지지 않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내 손가락이 마비된 것처럼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이 글들은 대부분 내 블로그에 올렸던 일기들이다. 갓 20대가 되었을 때 쓴 일기가 주를 이루며, 그 이후의 일기들도 섞여 있다. 일기이기도 하고 소설이기도 하다. 나에게 일기는 사실을 기록하는 글쓰기가 아니라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가장 자유로운 글쓰기다._9p

왜 일기는 무조건 사실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일기와 글쓰기를 따로 두었기 때문에 글쓰기는 미지의 영역으로 들어가 문을 꽁꽁 닫아놓은 형국이 되어버렸다. 단단히 닫혀있는 그 문 앞에서 나는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다.

결혼보다 이혼을 먼저 할 것 같다는 예감, 결혼을 하고 보니 결혼을 잘 하는 것보다 이혼을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결혼을 할 때는 다들 사랑에 눈이 멀어 불구덩이인지 혹은 에덴동산인지 구분도 하지 못한 채 뛰어든다. 이혼율을 보면 결혼이 그다지 행복만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건 자명하다. 이혼을 잘 하는 것은 중요하다.

나는 설명 없이도 사랑받고 싶어서 시를 쓴다고 말하지 못했다._121p

어느 날 이상한 글을 썼는데, 그러니까 나는 개떡같이 말했는데 누군가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그게 시구나 싶어서 시를 썼다. 개떡같이 말했기 때문에 찰떡같이 알아듣는 누군가가 생겼구나, 믿으며. 그러면 앞으로 훌륭한 개떡이 되도록 애쓰자. 독자가 찰떡이기를 바라면서. 왜냐하면 우리가 바라는 것은 이해심이 아니라 이해력이기 때문에._121p

개떡같이 말했는데 누군가 찰떡같이 알아들었기에 시를 썼다니, 3번의 출산 이후 원래도 좋지 않던 머리가 건망증이 심해져 "그거, 있잖아."라고 개떡같이 말하면 내가 말하는 의도를 찰떡같이 알아차리는 남편이 있다. 설명 없이도 나도 사랑받고 있구나. 작가 말대로 훌륭한 개떡이 되도록 애써야겠다.

미안해, 친구들아, 나는 문학 때문에 너무 편협해졌어. 나는 시를 쓰느라 우물 안에 들어갔고, 들어갔는데 우물이 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우물 안에 우물을 또 만들었고, 그 우물을 파서 기어이 더 깊은 우물 안으로 들어간 슬픈 개구리가 되어버린 거야. 왜냐하면 문학은 결국 깊이깊이 무언가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인데, 내가 무언가를 너무 깊게 이해할수록 우물 밖의 세상은 나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정말 개구리가 되어버린 거야._173p

나는 시를 쓰지도 않고 문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지만 여러 책을 읽으면서 혼자만의 공상에 빠져 있게 되는 시간이 많아졌다. 내가 책을 읽고 느낀 것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 공상은 나만의 세계에서 떠돌기만 한다. 편협한 사람은 나를 특징짓는 말로 어울린다고 느낀다. 조직생활을 한지 오래되었고 육아와 가정만 있는 삶이 지속되고 있다. 내가 태어난 30년 전보다 세상은 더욱 빨리 바뀌고 있고 나는 거북이걸음으로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외로울수록 책을 더 많이 찾게 되는데 책을 더 많이 읽을수록 더 외로워진다. 우물 안 슬픈 개구리가 될 거라면 글이라도 매일 쓰는 노력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저 나는 노력도 하지 않는 우물 안 슬픈 개구리.

작가들이 정신과 진료를 본 경험들을 풀어내주니 누구에게는 숨기고 싶은 아픈 기억일지 몰라도 그들의 글로 인해 사람 사는 것은 많은 것들이 비슷하게 돌아가고 있단 걸 알았다. 자체 진단으로 화병을 앓았던 것 같은데 결국 지금 내 위치에서 벗어날 용기가 없었기에 '곧 꺼내줄게'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곤 마음속 깊숙한 곳에 꽁꽁 묻어놓았다. 만약 내가 글로 풀어 낼 재주가 있다면 내 마음속 상처에게 후시딘 정도는 발라줄 수 있을까.

대부분 일기라고 하는데 좋은 글은 좋은 일기 쓰는 습관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뭐 했다 같은 초등학생도 쓸 수 있는 일기나 반성으로 가득 찬 자기파괴적인 일기 말고 잘 쓰고 싶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그냥 잘 쓰고 싶다. 문보영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작가의 시집 <책기둥>도 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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