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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서어서문학과 교수로 라틴아메리카 현대시와 현대소설, 문학적 유산을 떠받치고 있는 문화적 뿌리도 함께 연구, 탐구하고 있다. 서어서문학이란 스페인어권 세계의 언어와 문학을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한다. 문헌학적 접근뿐만 아니라 사회와 문화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통해 우리의 인식 지평을 넓히는 한편, 인간다움의 추구라는 인문학의 근본정신을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유행하는 주제도 아니고 자극적이지도 않은 이 책을 읽게 된 독자에게 보르헤스의 일화를 앞세워 감사하다고 작가는 먼저 말한다.

첫번째 대표 시인으로 루벤 다이로에 대해 소개한다. 루벤 다리오는 1967년 칠레에서 탄생 100주년 우표가 발행될 정도로 중요한 인물로 생각되는데 사실 그는 칠레 출신이 아니라고 한다. 그는 스페인에서 굉장히 높게 평가되고 있지만 서구에서는 문학에 철학이 없다며 비판받는다. 작은 시골 출신으로 그는 성공한 삶을 사는 듯 보였다. 하지만 시인의 삶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고달픈 것일까. 시인을 추방하고 예술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영혼 없는 사회와의 불화가 그의 죽음을 앞당긴 건 아닌지, 임종을 앞둔 루벤 다리오의 모습이 쓸쓸해보인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로 유명한 파블로 네루다. "시가 내게로 왔다"는 천상 시인의 말을 남긴 시인이다. 그는 독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매몰된 칠레 광부들이 그의 시를 읽으며 삶의 의지를 일깨워 줬을 정도니 말이다. 그의 시는 유난히 서민들에게 많이 읽혔으며 그가 쓴 사랑의 시는 지금 읽어도 가슴을 젖게 한다.

세번째는 영혼을 위무하는 시인 세사르 바예호다. "나는 신이 아픈 날 태어났다.", "장대비 쏟아지는 파리에서 죽겠다"라는 시를 쓴 것처럼 그는 고통의 시인이다. 젊은 나이에 고향을 떠나 줄곧 이주자의 삶을 살았으니 평탄치는 않았을테다. 바예호는 많은 작품을 남기지 않았다. 단 세 권의 시집으로 최정상에 섰다.

평생 가난했고 불운했던 인생은 그의 시 전반에 드러난다. 그의 절망적인 삶을 시로 표현할 수 있었기에 살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시인으로 살면서 부와 명예를 다 쥔 네루다의 시도 밝고 즐겁게 읽을 수 있지만 기형도와 비슷하다고 말하는 바예호의 시는 가난했던 대중들을 대표하는 모습처럼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니카노르 파라는 반시인이다. "시만 빼고 모든 게 다 시다!"는 발언은 매우 좁은 의미로 정의되던 시의 개념 자체를 무한대로 확장시켜버린다. 그가 쓴 시들은 파격적이다. 지식인들이 정해진 틀에 맞춰서 써야 한다는 시의 편견을 깨버렸다. 주기도문을 코카콜라를 마셔라는 말과 결합해서 쓰고 여성이 다리를 벌리고 있는 그림을 시에 함께 실으며 타 시인들의 여성 고착화에 전면으로 맞선다. 시인이라 함은 뭔가 보통 사람들과 다를 것 같이 느껴지고 그들도 그렇게 보이게끔 행동하기도 한다. 하지만 파라는 시인은 신성하지 않은 존재라고 말한다. 개인적으로 고착화된 이미지를 깨부순 용기있는 도전을 한 파라에게 가장 많은 정이 갔다.

유명한 시인 4인을 추리기 쉽지 않았을거라 생각한다.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어내려갔다. 쉽지 않았지만 수확은 있었다. 내가 몰랐던 지식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며 내가 존재하지 않았을 때에 그 시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의 궤적을 좇는 일은 흥미롭다. 대부분의 시인들은 가난하고 힘겹게 살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의 길을 걸었던 사람들, 부와 명예를 쥐었지만 여러 도전을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 나의 삶은 어떤 방향으로 개척하고 살아가야할지 고민해본다. 쉽고 가벼운 책은 금방 읽고 즐거우나 지식을 얻는 책은 조금 힘겹게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책장을 덮었을 때의 그 기쁨이란. 잘 읽히지 않는 분야의 책을 쓰느라 고생한 작가에게 감사한 마음과 함께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새로운 라틴아메리카 문학에 대해 공부할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다. 이런 보석같은 책들을 독자들이 발견하여 재미를 느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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