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다한 후기

호르몬이 그랬어 / 박서련

free-and-easy 2021. 2. 18.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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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몬이 그랬어>는 <체공녀 강주룡>의 작가 박서련이 20대에 적은 습작을 묶어놓은 소설집이다. 3개의 짧은 단편소설들을 묶어놓았고, 그래서 트리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기숙사의 장학금은 성적순이 아니라 얼마나 더 먼 곳에서 얼마나 더 가난하게 살았느냐를 기준으로 주는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다시 바람은 그대 쪽으로 17p

침대 위에 내가 두고 나온 종잇장은 지금쯤 피를 조금 먹었을까. 나는 거기에 내가 적어둔 문장을 떠올린다. 내가 아니야, 호르몬이 그랬어. 나오라는 토는 안 나오고 눈물이 울컥울컥 나온다. 구역질이 밀어낸 피가 허벅지를 타고 흐르며 식는다.

호르몬이 그랬어 78p

이상하지 않아?

뭐가?

살아 있는 우리보다 죽은 사람들이 지구상에서 더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거.

총 89p

가난한 젊은이들이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모습을 담은 세 편의 소설은 현재 작가가 30대라고 하는데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젊은이들의 삶의 모습이 크게 바뀌지 않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다시 바람은 그대 쪽으로>는 저렴한 오래된 구기숙사에 살면서 친구 예를 사귀었다. 그 둘은 서로에게 끌리지만 술에 잔뜩 취한 후에 한 키스 이후 진전은 없고, 서울에서 예를 만날 수 있을까 기대하며 소설은 끝이 난다. 젊어 고생하고 힘들 때 함께 했던 친구는 잊기 어렵다. 더군다나 사랑했던 사람이라면.

책 제목과 같은 <호르몬이 그랬어>는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서 이혼하지 않고 지내는 부모님을 보며 의아한 딸.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삼촌"이라 부르라며 애인을 집에 데리러 오고 아버지가 모는 택시 안에는 [월드컵 대딸방]이라는 스탬프 3개가 찍혀있는 카드가 들어있다. 연애가 미끄러지고 엄마의 연애도 질투가 난다. 엄마의 애인을 꼬셔 잠이라도 자자했지만 술에 취해 자고 일어나보니 삼촌의 고등학생 아들 침대에 생리혈을 묻히고 나온 화자... 그래 "내가 아니야, 호르몬이 그랬어"

총_ 총은 주인이 없는 빈 무덤을 가리킨다. 나와 너는 주인에게 속이고 몰래 동거를 시작한다. 코딱지만 한 집에서. 악착같이 아끼지만 탈출할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어느 날 연탄 냄새가 나지만 동거하는 걸 들킬까봐 주인에게 묻지도 못한다. 그날 왜인지 싸웠다. 나는 밖에 나갔다 귀가하여 죽은 너를 본다. 죽을 때도 들킬까봐 이를 악 물었는지 토사물과 허리춤에 굳은 오줌이 슬프게 한다. 없는 사람으로 살았지만 죽고 난 후는 기록을 해야 한다. 납골당에 돈을 낼 수 없어 자유를 주려고 한다. 그녀들 말처럼 왜 살아 있는 사람보다 죽은 사람들이 더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을까.